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 페인 (문단 편집) == 여담 == * 1910~1920년대 당시 신페인 당의 독립 노선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마이클 콜린스(정치인)|마이클 콜린스]]가 주도하는 [[IRA]]의 무장투쟁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이몬 데 발레라]]가 주도하는 아일랜드에게 우호적인 국제 여론 조성, 즉 외교노선이었다. 이중에서도 이몬 데 발레라의 외교전은 미국 내 [[아일랜드계 미국인|아일랜드계]]들의 큰 호응을 받아 아일랜드의 독립에 상당한 기여[* 미국 상원이 공식적으로 아일랜드의 독립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문화적으로 WASP계가 주도하는 건 맞아도 이데올로기적으로는 20세기 초반에는 여전히 반영 공화주의가 막강했고, 아직 영국령이었던 캐나다와의 국경 분쟁도 있었기 때문에 반영 여론이라고 딱히 배격 받은건 아니다. 오히려 90년대까지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등 동북부 도시에서 [[아일랜드 마피아]]와 놀아나며 IRA로 군사자금은 물론이고 스팅어 미사일 같은 고급 첨단 무기까지 버젓히 몰래 보내는거 방치하다가 [[911 테러]] 맞고 호다닥 아일랜드계 교포고 나발이고 그냥 해외 무장단체들과 자국 내 시민단체들간의 교류에 눈을 부라리며 감시하기 시작한 현대와 달리 당장 [[색부호 전쟁 계획|미군 작계에도 멀쩡히 영국을 메이저 가상 주적중 하나로 상정하고 있던]] 20세기 초반이 훨씬더 미국을 거점으로 반영운동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단적인 차이가 영국이 20세기까지 식민지로 삼고 있던 캐나다, 호주에는 여전히 은연중에 상당히 영국 본토 문화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한걸 느낄수 있고, 실제로 현대 북아일랜드 분쟁의 핵심 사회적 기관 중 하나인 얼스터 친영파 주민들의 친목, 정치, 영향력 집단인 오렌지 오더 조직들이 그대로 수출되어 현지 극우 정치깡패로 악명을 상당히 떨쳤다. 그러나 반면 미국에선 비슷한 의식, 사상을 가진 개신교 우월 극단주의자들이 똑같이 오렌지 오더를 만들었으나 아무런 관심, 주목도 못받고 소리없이 사라졌다. 민간 사회에서 영국계 개신교 주류가 카톨릭 비주류를 차별한거야 마찬가지였지만 미국인들은 일찍부터 강력한 독자적 정체성을 형성했고, 카톨릭 이민자에 대한 멸시와는 별개로 그렇다고 해서 친영적 정체성으로 희귀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를 했고 당시 미국 체류중이었던 [[이승만]]이 여기에 깊은 인상을 받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 당시 그대로 벤치마킹하여 한국 독립 촉구안을 [[미국 의회]]에 상정했지만 부결되었다.[* 이승만의 전략이 이몬 데 발레라의 전략에 비해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는 IRA의 무장투쟁이 커다란 효과를 거두었기에 영국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수 밖에 없었다는 점인데, 발레라는 외교노선을 통해 IRA가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노력한 반면, 이승만은 [[태평양 전쟁]] 이전까지 임시정부의 여러 무장 투쟁에 적대적이었다. 둘째는 정치적 압박을 넣어줄 세력의 차이인데, 발레라가 활동하던 시기에 동포인 [[아일랜드계 미국인]]은 머릿수(...)로 미국 정부를 압박할 수 있었고 미국 역시 반영 성향을 배격하지는 않아서 아일랜드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기 쉬웠던 반면, 이승만에게는 정치적 압박을 넣을 재미 한국인의 수도 부족했고, 정치적인 영향력도 부족했을 뿐더러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전만 해도 일본과 친했기 때문에 무산되었다.] * [[아일랜드 내전]] 및 분당을 거치면서 본거지였던 아일랜드에서는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약해졌지만 아직도 [[북아일랜드]]에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2007년에 원내 제2당으로 부상해 부총리를 배출하더니[* 참고로 북아일랜드 자치정부의 총리와 부총리는 이름만 다르지 권한은 동일하다. 제도적으로 타협을 강제한 것이다.] 2009년에는 최다 득표 정당으로까지 성장. 심지어 최근에는 독립국 아일랜드에서도 지지율이 상승하여 기존 3대 정당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신페인이 뜨는 과정에서 기존 3대 정당 중 하나였던 [[노동당(아일랜드)|노동당]]은 군소 정당 수준으로 추락해 버렸다. * 신페인이 평화 노선으로 전환하고 독립국 아일랜드의 정통성을 인정해 정상적으로 의정 활동을 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자 여기에 반발해 뛰쳐 나온 분파가 아직도 있다고 한다. 이들을 Republican Sinn Féin([[아일랜드어]]: Sinn Féin Poblachtach)이라고 부른다. 아일랜드와 영국 모두에서 정식 정당으로 등록돼 있지 않지만 스스로는 정당이라고 자칭한다. 즉 법외 정당[* 불법 정당이라는 뜻이 아니다. 법적으로 정당이라고 인정을 못 받는다는 것일 뿐 이들의 존재와 이들의 활동 자체가 위법은 아니다.]인데, '압제자' 영국과, 그 영국과 '야합'해 생긴 [[아일랜드 자유국]]의 후신인 현 아일랜드 정부를 인정하지 않아 양국의 선관위에 등록을 안 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택한 길이라 영국 정부와 아일랜드 정부도 어쩔 수 없다. * 명목상 [[영국 의회]] 최초의 여성 의원이 이 신페인 소속이었다. 이름은 콘스탄스 마르키에비츠(Constance Markievicz).[* 남편인 카시미르 마르키에비츠(Casimir Markievicz)가 [[폴란드]] 출신이기 때문에 성이 폴란드식이다. 콘스탄스 본인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이다.] 콘스탄스는 1918년 12월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것처럼 신페인의 당론에 따라 의회에 출석하지 않고 아일랜드 현지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래서 명목상이 아닌 실질적인 최초의 여성 의원은 1919년에 당선된 낸시 애스터(Nancy Astor)를 꼽는다. 콘스탄스 마르키에비츠는 아일랜드 독립 이후엔 [[아일랜드 자유국]] 정부의 노동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이는 세계 최초의 여성 내각 각료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